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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고 걸어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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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원장
기사입력 2024-03-07 [14:37]

1989119일 베를린장벽 붕괴를 현장에서 지켜볼 때 가슴에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민족이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동서독 주민 사이에 터져 나온 것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감성이었다. 하나였다 나뉘어졌던 것이 다시 하나가 되는 기쁨이 온 몸에 전해왔다.

 

곧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가 늘어나자 맥주잔이 넘쳤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통일이 되고 통일비용이 급증하고 길어지자, 서쪽에서는 부담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동쪽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동쪽에서는 서쪽이 너무 생색내고 자신들을 2등 국민 취급한다고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통일 후 어느 해에 60대의 동쪽 부부, 70대의 서쪽 부부를 큰 배를 타는 여행에서 만났다. 6명이 둘러앉으면 화기애애했다. 동서쪽 부부 가운에 어느 한 쌍이 빠지면 분위기는 자못 심각해졌다동쪽의 남편은 동독 시절 아주 큰 체제선전 출판사 사장이었고, 부인은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맑스-레닌주의를 강의했다. 철저한 공산당원들이었다.

 

이들의 통일 비난이 시작되었다. 통일 이후 둘 다 직업을 잃었다, 이전에는 베를린에서 큰 아파트를 아주 싼 값으로 제공받았는데 이제는 작은 아파트에 비싼 임대료를 내어야 한다, 동독 시절 자신들이 받은 소득에 따른 연금을 받아야 하는데 통일 이후 동독 노동자 평균 연금을 받아 부당하다 등 끝이 없었다. 그러면서 이런 여행이 세 번째이고, 아들이 슈투트가르트 벤츠 본사에서 회계사로 일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마음껏 누리는 자유, 단 한 푼도 서독 연금체제에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둘 다 받고 있는 연금, 통일이 되었기에 아들이 서쪽에 오고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던 통일 편익(便益)에 대한 감사·고마움은 표현하지 않았다.

 

서쪽 할머니는 남편이 목수로 평생 일했고 자신은 전업 주부여서 남편만 연금을 받는다,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이런 여행을 하는데 저 동쪽 부부는 이른바 완전고용 사회라는 사회주의체제에서 둘 다 직업을 가져 둘 다 통일 이후 연금을 받고 그것으로 여행을 즐긴다, 여행사들이 동쪽 연금 생활자들에 의해 먹고 산다, 그러면서 감사할 줄 모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할아버지는 몸이 아파 생애 처음 가진 멋진 여행도 마치지 못하고 들 것에 실려 내렸다.

 

40년 지속된 분단의 극복에 40년 이상의 시일이 소요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눈여겨 봐야할 것은 길거리에 뛰쳐나가 분단 시절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독일인, 특히 구동독 주민이 없다는 사실이다.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러저러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들 스스로 선택했던 길이기에 감수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의로 서독으로 행진했고, 서독 헌법인 기본법에 명시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체제를 1990318일 전 세계 지켜보는 가운데 동독 40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투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우리와 동족임을 거부하고 뭐라 우겨도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헌법4조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실현해야 한다. 이 상식과 양식을 점검해야만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그럼에도 이번 4.10 총선에서 이 상식과 양식은 반드시 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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