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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 자유에 따르는 책임·의무 알기 까지 시간 걸릴 것”

[인터뷰] 최복화 서울지방경찰청 사법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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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1-07-15

 

 


북한의 신문과 TV에서 가장 먼저 크게 보도되는 것은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동정이다. 다음으로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자고 선동하는 당국의 정책홍보이며 사회와 집단에 헌신하는 인민경제 각 분야의 모범적 주민들의 열성모습 등이다. 특이한 것은 노동당의 실책이나 사회에서 생기는 각종 범죄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 점이다. 지역유선 방송에서 특정 개인 비판방송은 조금은 한다. 그러니 북한주민들은 사회의 각종 사건사고 등을 구전(입소문)으로 알고 있다.

 

탈북민들은 남한에서 TV와 신문 등을 보며 사회의 각종 범죄비리를 알게 되고 ‘자본주의 사회는 사고의 천국’으로 착각도 가진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은 분명 새로운 소식을 국민들에게 신속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본분이다. 다소 복잡하면서도 편리한 자본주의 생활문화와 방식에 익숙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탈북민들이다. 시행착오는 반드시 필수이다. 최근 탈북민으로써 유일하게 서울경찰청 사법통역사로 일하는 최복화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중국어 통역 전문가이던데.

탈북 해 중국에서 불안한 신분으로 배웠던 중국어가 남한에 와서도 직업으로 써먹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부터 전문 중국어통역을 하고 싶었다. 입국 1개월 뒤 ‘HSK중국어어학능력시험’을 보았다.

서울에 있는 ‘현대통번역어학원’(6개월)과 ‘세종어학원’(3개월)을 다녔다. 2008년에 시작하여 모두 2회 시험, 1회 특별시험을 보았으며 세 번째 만인 2010년에 한국관광공사에서 발급하는 ‘관광통역안내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중국에서 불안한 신분으로 배웠던 중국어

남한에 와서도 직업이 되리라고 생각 못해

현대통번역어학원 다녀… 한국관광공사에서

발급하는 ‘관광통역안내사자격증’ 취득 해

 

자격증 갖고 경기지방경찰청에서 수사통역

경찰서 일하는 임시통역원 귀화한 중국사람

탈북민출신으로 중국어 수사통역사로는 유일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중국어통역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역경찰서에서 탈북민자매결연이 있었다. 나와 자매결연을 한 모 기업체 사장님은 중국과 단기무역을 했는데 마침 통역원이 필요했다. 사장님의 요청으로 10일간 그 회사 통역 일을 해주었다. 만족한 사장님이 수고했다며 사례비로 220만을 봉투에 넣어주었다. 내가 남한에서 자격증을 갖고 당당하게 일을 하여 받은 첫 임금이었으니 그때가 제일 감개무량했다.

 

- 어떻게 경찰 부문 통역사가 되었는가.

처음에는 담당형사의 소개로 지역경찰서에서 몇 번 통역을 하였다. 이후 자격증을 갖고 경기지방경찰청에서 중국어 수사(搜査) 통역을 하게 되었다. 일종의 프리랜서 격으로 일하는데 일주일에 3~4, 한 달에 10~15회 정도 한다.

통역비는 시간당 3만원, 교통비 2만 4천원이며 보통 1회에 3~5시간 통역을 한다. 경찰서에서 일하는 임시통역원은 대부분 귀화한 중국 사람이다. 전국에 탈북민출신 중국어 수사(搜査) 통역사로는 내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서울지방경찰청 사법통역사는 언제부터 했나.

지난 2019년 기존의 ‘수사통역사’가 ‘사법통역사’로 바뀌면서 자격증도 달라졌다. 2020년 6월, 한국자격교육협회에서 주관하는 사법통역사 자격증을 새로 취득하였다. 시험은 이론 및 실기가 있다. 이 분야를 가만히 보니 ‘사법통역사’ 자격은 한국에서 외국어대학교를 나온 학생들도 다소 취득하기 어려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 한국서 중국인들이 저지르는 범죄 부류를 어떻게 보는가?

가장 많은 범죄는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하는 보이스피싱(전화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이 사기단의 최고 지도부는 모두 외국에 있다. 전화나 문자, 위쳇(중국카톡)으로 하기에 좀처럼 검거가 쉽지 않으며 국내에서 잡히는 것은 일부이다.

다음으로 많은 부류는 유흥업소 종사여성들의 불법행위(성매매) 및 성범죄 등이다. 음주로 인한 폭력도 적지 않으며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노숙자가 되는 사례도 많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한탕주의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 피해자 부류는 어떻게 되는가.

놀랍게도 80%가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범죄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이스피싱이 그렇다. 요즘 범인들은 아이 납치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는데 자기 아이를 끔찍하게 여기는 엄마들의 심리를 악용하는 것이다. 범인들은 5~6명씩 조를 짜서 움직이는데 마치도 첩보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교모하고 대담한 방법으로 범행을 실행하고 있다. 방법은 해마다 진화된다.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하는 보이스피싱 많아

사기단의 최고 지도부는 모두 외국에 있어

전화나 문자, 위쳇으로 해서 검거 쉽지 않아

 

경찰청에 출입할 때 낯익은 의경들 거수경례

수사경찰관속에서 탈북민 출신 사법통역사로

입소문 자자… 한국 국민이 되어 경찰서에 출입

경찰관들도 어려워하는 통역 일 하니 가슴 뿌듯

 

- 중국 범인들의 특성은 뭐라고 보나.

일단 중국은 이렇다. A씨와 B씨가 서로 폭력으로 다투었다가 화해를 했다. 공안이 단속을 나왔다가도 그냥 돌아간다. 그런데 한국은 안 그렇다. A씨와 B씨가 폭력다툼 후 화해를 했어도 그 사건 기록은 남겨야 하기에 조사를 한다.

이런 것을 모르는 중국인들이 많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중국폭력단이 없는 것으로 알고 모두 개인 폭력배들이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을 상대로 진행하는 범죄행위도 만만치 않으며 치정(이성), 금전관계 등으로 인한 것이다.

 

- 사법통역사의 영예감은 어떤 것인가.

경찰청에 출입할 때는 낯익은 의경들이 거수경례를 한다. 수사경찰관들 속에서 ‘탈북민출신 중국어 사법통역사 최복화!’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한국 국민이 되어 경찰에 출입하여 경찰관들도 어려워하는 통역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그럴수록 늘 겸손하고 성실히 살아야 한다고 자상한 남편이 귀띔을 해준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1974년 둘째로 태어나

아버지는 무산군 상업관리소에서 근무하고

어머니 무산여자고등중학교 교원으로 일해

무산광업전문대 졸업 후 임산사업소 취업

 

- 고향이 어디인가.

함경북도 무산에서 1974년 1월에 태어났다. 2남 1녀 중 둘째였다. 아버지는 무산군 상업관리소에서 근무하였고 어머니는 무산여자고등중학교 교원(교사)이었다. 1993년 무산광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연상임산사업소에서 일을 하였다.

4년간 대학생활 기간에 불행히 아버지는 ‘정치적 과오’(남조선 노래를 들은 것)를 범하여 청진에 있는 전거리교화소에 수감되었고 우리 가족은 무산군 연상리로 추방되었다. 하여 연상임산사업소에 배치를 받아 일을 했던 것이다.

임산사업소에서 포시공(모래를 살포하는 사람), 검축공(벌목수량계산원)으로 일했다. 불을 피워 흙을 녹여서 하는 모래살포는 겨울에 하는데 굳이 비교하면 동절기에 도로에서 얼음 때문에 차가 미끄러지니 염산을 뿌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모래를 뿌리지 않으면 수천 톤의 나무더미가 미끄러져 대형사고가 난다. 임산사업소에서 노동자 1인당 하루 벌목량은 1.3입방인데 직경 20cm, 길이 10m이상 나무 3~4대 정도이다.

 

- 임산 일을 자세히 말해 달라.

무산군 연상임산사업소 아래 10개의 지역별 작업소가 있다. 각 작업소 안에는 4~5개의 작업반이 있으며 작업반원 10여 명 중에 2~3명은 여성이다. 산에서 나무를 베는 벌목 일은 주로 겨울에 진행되며 전체 물량의 80~90%를 생산한다.

봄에는 벌목한 자리에 어린 나무 모를 심고 여름에는 홍수대비를 위한 대책을 세운다. 여름에는 다소 한 가한데 가을에는 겨울철벌목 준비에 돌입한다. 무산군에만 해도 아무리 벌목을 해도 끝이 없을 정도의 무성한 자연림이 많다.

 

- 선전대 예술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아버지가 2년간의 교화생활을 마침과 동시에 우리 가족도 연상임산사업소에서 퇴소했다. 이후 나는 무산광산연합기업소 지하분광산 선전대(예술공연단)에서 대원(성악가수)으로 근무하였다. 물론 친인척의 힘을 빌려서 취업한 자리이다. 나는 유년시절 음악에 소질이 있어 고등중학교 때 음악소조에서 활동하였다.

 

연상임산사업소 내 10개 지역별 작업소 있어

각 작업소 안에는 4~5개의 작업반이 있으며

작업반원 10여 명 중에 2~3명 여성들이 참여

나무를 베는 벌목 일은 주로 겨울철에 진행

전체 물량 80~90% 생산… 무산군에만 해도

아무리 벌목해도 끝없을 것처럼 자연림 많아

 

- 탈북동기는 무엇인가.

인민군대에서 제대한 오빠가 생활난 때문에 중국밀수 및 탈북브로커를 하였다. 불행히도 김정일의 ‘인신매매꾼(브로커)에게도 혁명의 총소리를 울려라!’는 방침에 걸렸다. 1년 7개월간의 예심을 받고 1999년 9월에 공개사형 되었다.

4월에는 아버지가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오빠로 인해 정치범가족이 되었다. 외삼촌이 “너라도 중국에 가서 새롭게 살라!”며 강제로 떠밀었다. 단 2~3시간의 고민 끝에 탈북결심을 마쳤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26살 때이다.

 

- 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길림성 화룡과 료녕성 북전시에서 1년 반 체류하며 두부공장 일을 하였다. 중국생활 1년 만에 신문보고 글을 쓰게 되었다. 이후 신문광고를 보고 판진시로 옮겨 ‘청룡금형원’에서 일을 했다. 여기서 지금의 남편(한국남자)을 알았다. 나는 처녀였고 남편도 총각이었으니 자연히 결혼을 약속했다. 남편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동시에 위조중국인 신분증을 가진 나는 국제결혼비자를 받아 2007년 2월에 입국했다.

 

- 시부모님의 반응은 어떠하였나.

시댁의 남편 형제가 남자 셋, 여자 셋인데 모두 화목한 가정이다. 당시 80세 넘으신 시부모님에게 유일한 친손자를 안겨준 며느리가 바로 나였으니 시부모님의 기쁨과 만족은 말로다 표현 못한다. 나를 친딸 이상으로 대해주니 말이다.

시골에 있는 시댁에서는 나를 ‘무산댁’ 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우리부부야 말로 진짜 ‘통일부부’인 것이다. 모든 식구들로부터 언제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때마다 이북의 고향에 계시는 친정어머니 생각으로 목이 메어온다.

 

- 정부의 탈북자 인정은 어떻게 받았는가?

결혼생활 초기 집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남편이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서 고향친구들을 만나면 좋겠다고 했고 이후 거기서 먼저 온 친구를 알게 되었다. “하나원 몇 기인가?”하는 친구의 말에 “하나원이 뭐냐? 나는 한국남자 만나 시집왔다!”고 했더니 “당장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라”고 하더라. 하여 지역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 설명했고 40일 뒤 탈북자 확인을 마쳤다. 2007년 9월이었다.

 

- 탈북민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는.

자본주의사회는 금전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 중국범인들이 은밀히 거행하는 보이스피싱은 남한사람들도 많이 당하는 범죄다. 남한생활에서 이제 초등학생 수준이나 마찬가지인 우리 탈북민들은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보이스피싱에 걸려 실수로 엄청난 금전피해는 물론 정신피해까지 보아도 그것은 엄밀히 본인 불찰이다. 국가기관이나 관공서(구청, 경찰성, 은행, 우체국 등)은 절대 개인에게 금전 관련 전화나 문자를 하지 않는다.

요즘 탈북민들 20~30%가 “다시 북한으로 가고 싶다”는 소리가 있다. 나름 북한서 중산층이었던 그들이 법치국가 남한에서 살기 다소 불편한 것이다. 뭐든 아무렇게나 다 하는 ‘자유남조선’인줄 알고 왔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자유는 누리기 전에 책임과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사랑하는 남편이다. 내가 서울지방경찰청 사법통역사 일 외에도 프리랜서로 탈북민 예술단체 공연활동까지 하는 것은 남편이 집 안 일을 적극 도와주기 때문이다. 물론 국토분단의 38선 저 위에서 내려온 이 함경도 여인을 한 식구로 받아주고 사랑해주는 시댁식구들에게도 정말 고맙다. 오랫동안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이 주말과 휴일이면 늦둥이 아들과 함께 놀아주는 모습에서 가족의 행복을 한껏 느낀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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