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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50년대부터 ‘총대 끝에 핵’구호…핵 보유 꿈꾸어 왔던 인물”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13] 북 지방은 동네마다 새벽6시 사이렌소리에 하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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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문
기사입력 2021-01-19

▲ 원산 근로자의 오후 한 때   © 통일신문(사진 송광호 제공)



 

북한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은 개선되지 않았다. 늘 식량이 부족했다. 김대중 정부가 퍼 준 5억 달러(약6천억 원)도 부족했는가. 만20년 전의 5억 달러는 엄청난 액수였다. 그러나 북한 사정이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 막대한 돈이 진정 굶주리는 북 주민들보다 다른 용도로 쓰여 졌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당시 그 불법자금이 북한 핵개발에 쓰였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것 아닌가.

북한은 세계 핵전문가를 끌어들이는 노력은
한시도 게을리 한 적 없어… 구소련 붕괴 후
모스크바 초창기 경제난에 봉착한 소련핵과학자
월2천 달러에 데려간다는 러시아신문기사 읽어


어쨌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은 IMF사태는 진정되는 국면을 맞았고, 북한은 일단 고난의 행군이 마감된 듯했다. 북한은 큰 고비는 넘긴 모양새를 보였으나 외부로부터는 지속적인 식량 원조를 받았다.

그즈음 토론토에서 캐나다 곡물은행(Canadian Foodgrains Bank)대표인 리처드 피(Fee)씨를 만났다. 그는 캐나다 장로교회 세계봉사 및 개발부 책임자이기도 했다. 북한을 4차례 방문했다는 그는 “서방국가에서 북의 핵무기개발을 이유로 식량 원조를 중단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피 대표 견해는 “북한 핵무기개발관련 건은 북측의 전쟁준비가 아닌 단지 미국 등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구하는 타협수단인 것 같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세계 식량프로그램(World Food Program)측에서 지원예산을 삭감해 현재 북한식량문제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염려했다.

또 “북한지방은 각 동네마다 새벽6시 사이렌소리에 하루가 시작되고, 저녁8시 이후에는 거리에 단 한명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암흑도시로 변한다.”면서 “북한 빌딩이나 가정에는 연료가 없어 추위를 견디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내가 볼 때 북한은 세계 어디고 핵전문가를 끌어들이는 노력은 한시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구소련이 붕괴된 후 내 모스크바 초창기시절 북한은 경제난에 봉착한 소련핵과학자들을 월2천 달러에 데려간다는 러시아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또 핵보유국인 인도와 대치중인 역시 핵보유국 파키스탄의 최고 핵물리학자과 관련얘길 들었다. 캐나다의 핵관련 전문학자들에게 접근한다는 캐나다 최고보안기관 경고도 토론토신문에서 접했다.

한국을 거쳐 토론토에 온 80대 탈북자 C씨는 난민신청으로 단기일 만에 영주권을 딴 자칭 김일성 측근자다. 그는 “나는 94년7월 김일성주석이 묘향산에서 죽었을 때도 함께 있었고, 수십 년간 늘 김일성주석 옆에 있었다.”며 “김일성은 50년대부터 ‘총대 끝에 핵’이라는 구호로 늘 핵 보유만 꿈꾸어 왔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에서 핵관련해선 극비에 속해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속한다.”는 것이다. C씨 관련해선 기회 되면 따로 인터뷰한 글을 소개할 생각이다. 어쨌든 북한은 핵을 최우선 국가목표로 삼아 오늘에 이른 것은 사실이다. 그런 북한에게 무조건 핵을 포기하라고 하면 그들이 쉽게 응할 것 같지 않다.

토톤토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55년생)얘기를 잠깐하자. 임 목사는 북한을 돕던 중 무기실형을 받고 복역하다 31개월 만에 석방돼 세상에 꽤 알려진 토론토 성직자이다. 그는 지난 96/97년부터 북한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당시 북에서 직접 캐나다 친북대표로 임명한 70대여성(고 전충림씨 부인)을 통해서였다.

그는 북을 지속적으로 다녔다. 10여 년간 150번 이상 방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미 주 한인교회들로부터 모금한 대북원조금으로 수천 톤의 식량, 수만 장 이불, 겨울 옷, 안경 등 각종 구호물품을 북한에 전달했다. 북한에 라면공장, 가발공장, 국수공장, 컴퓨터 학원, 학교, 양로원, 농장 등을 세웠고, 어업등 여러 부문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북한 경제특구인 함북 나선(나진, 선봉/옛 웅기)지구와 인근 회령, 군포 등지에도 양로원등 9개 복지건물들을 건립했다. 이 지역은 1998년 토론토 큰빛교회에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구) 선교사로 정식 파송된 전종석 은퇴장로(25년생)가 주축이 됐다.

전 장로는 “건물만 세운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매달 운영비, 인건비, 유지비 등으로 경비가 약3천 달러씩 들어갑니다.”하고 설명한다. 전 장로는 10여 년간 중국 연변지역과 북한 특구인 나선지구 지원 작업에 여생의 온 정성을 쏟고 있었다. 연길시 연평 병원 명예원장을 비롯해 북한 라진시 양로원 명예원장, 라진 원봉·군포 유치원 및 탁아소 명예원장, 원정리 탁아소, 회령 문산리 양로원 및 수북유치원 명예원장 등을 맡고 있었다.

이희아 장애인 피아니스트 (네 손가락뿐인 제1급 선천성장애인소녀)가 기증한 3천 달러 피아노도 그가 마련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임현수 목사 수감이후 북한선교일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 북한 양로원 노인절 날의 모습  © 통일신문(사진 송광호 제공)



북한을 돕던 중 무기실형을 받은 임 목사
복역하다 31개월 만에 석방된 토론토 성직자
96-97년부터 드나들기 시작… 당시 북에서
캐나다 친북대표로 임명한 70대여성 통해
10여 년간 150번 방북한 것으로 알려져


그때 가장 큰 지원사업은 함북의 한 호수를 막아 농토로 만든 일이다. 이 사업은 미주교포들의 헌신적인 특별후원으로 이뤄졌다. 이 일은 스폰서의 개발지원이 끊겨 중단되긴 했지만, 한 때 함북 주민들 사이 큰 화제꺼리였다고 한다. 당시 북미 교회 등지에서 임 목사를 통해 북녘 땅에 투입된 돈은 천문학적 숫자였다. 그러나 헌신적인 미주동포들의 후원결과는 참담했다.

임 목사는 북한 반국가 정부전복음모란 죄명으로 종신형 (무기노동교화 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캐나다정부의 줄기찬 노력 끝에 만2년7개월 만에 석방되지 않았던가. 나는 그를 만난 일도, 대화 한번 나눈 적도 없다. 다만 그가 설교를 잘한다는 소문을 간혹 들었다.

그는 교인 30여명 남짓한 개척교회 (한국 최초동요작곡가 박재훈목사가 설립한 장로교회)를 인계 맡은 지 불과 수년 만에 수천 명 신자로 만들어 토론토 최대교회로 우뚝 성장시킨 젊은 목사였다. 그의 설교는 인기가 높았다. 한 예다. 한국에서 약20년 전에 한 독실한 개신교인 K후배가 이민 왔다. 그는 한군데 교회를 정하려 했으나 토론토교회숫자가 워낙 많아 쉽게 결정을 못했다.

수개월간 매주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며 목사설교를 듣던 중 어느 날 “형님, 이제 교회결정을 했어요,”하며 밝은 모습이다. 큰빛 교회로 결정했다한다. 고 최홍희 태권도총재부인 역시 다니는 교회다. 그녀 역시 서너 군데 교회를 옮기다가 임 목사설교가 맘에 들었다고 했다. 솔직히 내겐 임 목사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를 만나려고 교회사무실에 남긴 두 세 차례 메시지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대형교회 담임목사라 바빠 그런지 문턱이 꽤 높게 느껴졌다.

하루는 K후배가 집에 놀러왔다. 그는 내가 방북 신청할 때마다 찾아와 못 가게 말리곤 했다. 식구처럼 가까운 K는 내 방북이 늘 불안하고 맘에 걸렸나보다. “괜찮아. 내 염려 말고 자네교회 임 목사 걱정이나 해요, 나 같이 이름 없는 기자 나부랭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임 목사는 지금 잘나가는 것 같지만, 자칫 실수하면 한 방에 가는 수가 있어. 그때는 무슨 죄명인 줄 아나. 국가전복음모 죄야.”

“형님, 나는 임 목사님이 줄곧 북한에 다니는 것도 안 좋아해요. 하지만 무슨 국가전복음모 죄?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데…말도 안 되는 소리.” 후에 내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을 때 스스로 경악했다.

그전 연길거주 조선족 L씨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L씨가 정색을 하고 일러준 말이다. “송 기자님, 북한 어느 고위급인물이 비밀이라며 일러준 얘기가 있어요. 제가 조선족 중국공민이라 가끔 솔직하게 털어놓고는 해요. 공화국(북한)에서 가장 위험인물은 기독교인이라는 거지요. 요놈(기독교인)들은 겉으론 선교사라는 탈을 쓰고 베풀어주는 척하면서 항상 우리가 망하기만 바라는 반동분자들로, 절대 요주의해야 할 놈들이라고 전합디다.”

 

송광호 기자 38tong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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