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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 무거운 짐 좀 내려 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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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12-12

<박신호 방송작가>

연말을 재촉하듯 여기저기서 송년회 초청이 온다. 참석자의 면면을 떠올려 본다.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나 때로는 영상이 멈춰진다. 선명하게 떠 올라와야 할 얼굴이 가물거린다. 올해 홀연히 곁을 떠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더 안부 전화가 뜨악해지고 안 좋은 소식만 부쩍 늘어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저녁노을이 어느새 사그라들고 어둠에 묻히며 눈이 촉촉해진다.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건만 불쑥불쑥 내미는 건강 경고는 날로 늘어만 간다. 현기증이 일어난다. 어느 사이에 이 언덕까지 왔나 싶은 생각이 들자 온몸이 서늘해지는 걸 느껴진다. 마른기침도 자주 난다. 이게 죽음에 이르는 길목에 들어서는 것인가 싶어 훔칠 놀라다가 설레설레 머리를 지며 의자에서 일어선다.

어느새 거실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겉옷 하나 걸치고 다시 주저앉는다. 불도 켜지 않았다. 볼 사람도 없고 봐야 할 것도 없는데 불은 켜서 뭐하나 싶다. 눈을 감는다. 고요에 휩싸이며 어디로인가 끝없는 나락의 나라로 떨어진다.

적막을 깨는 전화 소리가 울린다.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든다. 천천히 통화버튼을 누른다.

저녁 잡수셨어요?”

맑고 높은 아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안 먹었어요

아직도요?”

모임이 재미있나 보우

그럼요. 동창 모임인데요. 당신도 모임에 자주 나가요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점심이나 먹었는지 언 듯 생각이 안 난다. 불을 켜고 식탁으로 간다. 아침에 보다가 만 신문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신혼집 텐트 짊어지고 세계로4년째 신혼여행 중인 부부

사진이 눈에 띄었다. 등산복 차림의 젊은 부부가 접어놓은 텐트를 요로 삼고 반듯이 눠 있었다. 그 옆에는 배낭 두 개와 각종 용품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4년째 세계를 여행 중인 양희종(35), 이하늘(34) 부부는 결혼식도 둘만이 산상에서 올리고 3년여를 9개국을, 걸어서 13천 킬로미터, 자전거 타고 1만 킬로미터를 다녔다고 한다.

기자가 묻자 남편이 말한다. “사회에서 멀어지니 자신에 대해 생각도 많아지고 다시 보게 된다. 욕심도 많이 버렸다. 사회생활하며 힘들었던 건 욕심이 많아서였다. 그걸 버리니 많이 여유로워졌다마치 수행 길에 오른 수도자 같은 답변을 한다.

아내가 말한다.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서로의 흠결을 보지 않는다. 항상 모든 걸 함께 하다 보니 순간적인 감정표출보단 이해하려 노력한다. 좁은 텐트 안에서 자야 하니 싸우면 떨어질 공간도 없다

삼면이 시퍼런 바다인 이 조그마한 반도 땅에서 눈만 뜨면 다투기 일쑤이고, 신부, 스님, 목회자는 대립각을 세우며 싸움 부추기에 바쁜 터에 이 무슨 득도의 일갈인가.

남편이 쐐기를 박는다. “상대를 고치고 싶은 것은 욕심이다. 걸으면서 이런 것들을 많이 내려놓게 된다” (중앙일보. 12.1)

젊은 부부의 선한 모습을 담고 서재에 들어갔다. 어디에고 전하고 싶었다. 특히 청와대에는 꼭 전하고 싶었다. 거긴 이런 글을 꼭 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다. 하지만 곧 부질없는 생각이란 걸 깨달았다. 원로들의 충언도, 석학들의 권유도, 서민들의 아우성도 외면하고 있는데 서생의 글 몇 자 써야 무슨 소용이 있을 건가 싶어서다.

집 안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눈만 뜨면 청소하는 아내인데 오늘따라 시간에 쫓겨 그냥 나갔다. 지금도 청소 안 하고 나온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청소를 끝내고 메시지를 띄었다.

청소 완료

나눔이 별건가. 기쁨이 별건가. 한결 마음이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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