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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의 부벽루·청천강의 백상루와 함께 북한 3대 정자로 꼽혀

[르포 ‘2019 단둥’] 호산장성 망루에서 통군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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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12-12

! 저기 산등성이에 누각 지붕이 보이지 그게 통군정(統軍亭)이야지난달 15일부터 20일까지 한반도접경연구센터에서 기획한 통일 한반도 접경지 단둥을 가다사흘째인 17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호산장성 망루에서 바라다 보이는 통군정 지붕은 비가 오는 탓에 흐릿했지만 역사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했다.

발아래 동쪽으로는 한 발짝만 건너면 북한이라는 평안북도 의주군 어적도의 방산마을을 지나 압록강 본류 넘어는 연행사들의 도강지였던 구룡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일제시대 해군기지와 군부대 막사가 늘어서 있어 옛 모습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어적도 방산마을과 의주 사이로 나룻배만 오갈 뿐 그 뒤로 삼각산 봉우리가 길게 누운 소처럼 펼쳐지고 통군정 지붕 뒤로는 의주시내가 아스라이 들어왔다.

통군정은 관서팔경의 하나로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연광정, 안주 청천강의 백상루와 함께 북한의 3대 정자로 꼽힌다.

1000여 년 전에 세워졌으며 고구려 시기 주요한 군사지휘처로 사용돼 북한은 준국보(보물) 11호로 지정하고 있다.

정면 4(14.4m), 측면 4(11.8cm)의 합각지붕 2층 누각인 통군정은 고려 때부터 있었던 정자를 1538년에 고쳐지었고 6.25때 파손된 걸 다시 복구했지만 현재의 통군정은 1980년대에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군정은 중국 대륙과의 정치 교류와 경제교역의 관문역할을 했다. 또한 만주 방면의 적군 동태를 관측하는 망루를 겸해 유사시에는 장군들이 군사를 통솔했던 독전대로 이용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슬픈 우리 역사를 지켜본 장본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국경 가까이 있는 이곳까지 피난해 머물면서 풍전등화 같은 국난위기를 눈물로 지새웠다.

국토를 왜적에게 내주고 대안의 중국 땅을 바라보며 선조는 여기서조차 물러서면 중국으로 피난할 수밖에 없는 비통한 심정으로 통곡해 통곡정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맑은 날이면 압록강철교도 눈에 들어와

 

1780624일 연암 박지원은 팔촌형이자 중국으로 가는 사신단의 정사(正使·총책임자)인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 자격으로 평안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들어갔다가 그 해 820일까지 열하에 다녀와 그 유명한 열하일기를 남겼다.

그는 저 통군정의 기둥과 난간과 헌함이 팔면으로 빙빙 도는 것 같고, 전송 나온 이들이 오히려 모래 벌에 섰는데 마치 팥알같이 까마득하게 보인다고 표현했다.

호산장성 망루에서 보면 동쪽으로는 의주의 통군정, 남쪽으로는 압록강과 아이허의 합수점, 멀리 위화도가 가물거린다. 맑은 날이면 압록강철교도 눈에 들어온다.

호산장성 꼭대기에서 본 일보과 일대. 관광객이 있는 쪽이 중국이다.

호산장성(虎山长)은 단둥 시내에서 12떨어진 관뎬만족자치현 후산진에 위치한 장성으로 멀리서 보면 호랑이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 호산이라고 불리어왔다.

중국은 1989~1990년 조사에서 명나라가 축조한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이라고 발표하고 1992년과 2000년 많은 돈을 들여 장성을 복원했다.

하지만 이 성은 명나라가 축조한 산성이 아니라 고구려 박작성(泊灼城)으로 중국은 동북공정 차원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최근 일부 학자들은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이 평양까지라는 해괴한 소리도 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보이는 북한 어적도 일대는 중국이 친 녹색 철조망에 가둬져 있고 망루와 국경이 되는 압록강 지류 곳곳에는 고성능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마치 거대한 수용소를 보는 듯하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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