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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가 고향 알리는 평양요리의 진수 보여주겠다”

[인터뷰] 북한음식전문점 ‘대동강오리불고기’ 강명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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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9-26

지난 1990년대부터 평양시민들은 모든 식당을 당국이 발급한 ‘식사안내표’(티켓)를 갖고 이용하였다. 기관 및 기업소, 인민반에 배급된 ‘식사안내표’ 수혜자는 중앙기관 간부들과 일부 극소수 모범시민에 한에서이다.

가령 식당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이 100명이라면 ‘식사안내표’를 갖고 입장하는 사람은 10명 정도 되었다. 그렇게 귀한 ‘식사안내표’는 보통 식사비의 10배 이상 가격으로 암거래되는 실정이고 간부들만 살판난 세상이다.

이러한 북한의 내부현실을 남한 국민들에게 TV와 신문, 인터넷 등 언론을 통해 알리는 장본인은 바로 탈북민들이다. 통일을 위해 남한 국민들이 북한의 겉모습도 알아야하지만, 반대로 그 속에 감춰진 진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TV와 유 튜브에 많이 출연하는 탈북민 중에는 강명도 전 경기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도 있다. 그가 최근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에 <대동강오리불고기>식당을 개업했다. 강명도 대표와 마주 앉았다.

▶개업을 축하한다.

고맙다. 또한 이렇게 찾아주니 진심으로 감사하다. 교통편으로 보나 지역 상권으로나 보나 이만한 명당자리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지역 위치도 무시하지 못 할 정도로 중요하다. 개업 첫날 다소 좌왕우왕 했어도 지금은 잘 안착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개업당일(8월 12일)은 온종일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 위주로 유 튜브방송을 보고 찾아 온 손님도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실향민과 탈북민가족이 많았다. 축하난(꽃)은 40개가 넘었다. 그 많은 난을 보면서 ‘차라리 꽃 보낼 돈으로 식당에 와서 음식이나 팔아주지!’ 하는 생각도 조금 들더라.

▶식당 이름도 메뉴도 ‘오리불고기’인데 소개해 달라.

오리지널 북한음식 전문점이다. 사장이 탈북민이고 7명의 직원 과반이 탈북민이다. 내가 북한 연구교육 분야 못지않게 음식을 만들고 관리하는데 관심이 많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고향사람들과 함께 고향음식을 판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까. 어쨌든 지금 하는 이 일에 너무 만족하고 행복하다.

흔히 서울불고기가 ‘소불고기’라면, 평양불고기는 ‘오리불고기’다. 평양의 대표적 종합음식점인 ‘청류관’ 오리불고기는 그 맛이 일품이다. ‘청류관’은 금수산의사당(일명 주석궁) 경리부 산하이다. 주석궁 소속 요리사들이 비법을 가르쳐 요리하는 청류관 오리불고기는 평양에서도 내 노라는 미식가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입맛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평양고려호텔 주방장들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이다.

일단 이 곳을 잘 키워놓고 여러 지역에 체인점을 개설할 예정이다. 본점인 이곳에서 재료와 소스를 특별히 만들어 체인점에 공급하는 형식이다. 체인점은 한 두 사람이 4인용 테이블 3~4개만 갖고도 영업을 할 수 있으며 한 달 매출을 3,000~4,000만원 거뜬하게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평양불고기는 ‘오리불고기’…‘청류관’

오리불고기는 맛이 일품으로 주석궁

소속 요리사들이 비법을 가르쳐 만들어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평양고려호텔

주방장들도 감칠 맛에 고개 끄덕일 정도

 

▶식당 경험이 처음인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줄 아는데 전혀 다르다. 25년 전인 1995년부터 2년간 경기도 포천에서 ‘백두산진달래관’ 식당을 열어 냉면, 만두, 순대 등을 팔았다. 그 후 서울 강남 차병원 주변으로 이사를 했고 거기서 3년 동안 장사를 했다. 이후 개인사정으로 식당을 접었으며 신학공부와 다른 사업을 했다. 어쨌든 20년 전에 5년간 일했던 식당일을 지금 다시 한다는 것이 다소 새삼스럽기는 하다.

▶창업 희망자에게 좋은 소식일 수 있겠다.

장담하건대 이 사업 만큼은 우리 탈북민들을 위한 영세민 경제활동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정시간의 교육을 이수 받은 창업 희망자가 소자본으로 시작해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무슨 일에서든 성실히 흘린 땀의 대가가 더욱 보람 있는 법이다.

▶고기집의 생명은 양념인데 누가 개발했나.

내가 했다. 2년 전부터 지인이 운영하는 서울 청량리시장 근처 ‘평양장마당’ 식당에서 시간이 될 때마다 꾸준히 연구하고 실습했다. 그때부터 많은 고객이 ‘대동강오리불고기’ 호평이 좋았다. 나는 평양에서 금수산의사당과 청류관, 고려호텔 1층식당 등에 음식재료를 납품하며 ‘대동강오리불고기’의 비법을 요리사들로부터 전수 받았다. 젊어서 배워서인지 지금도 그 내용이 잊혀 지지 않는다.

 

2년 전부터 지인이 운영하는 청량리시장

근처 ‘평양장마당’ 식당에서 시간이 될 때

꾸준히 연구하고 실습해…그때부터 많은

고객들 ‘대동강오리불고기’에 대해 호평

 

평양에서 금수산의사당과 청류관, 고려호텔

음식재료를 납품하며 ‘대동강오리불고기’의

비법 요리사들로 전수 받았던 것 큰 힘 돼

 

▶식당을 개업한 이유는 뭔가.

탈북민들의 일자리 창출이다. 현재 나를 포함해 4명이 탈북민이다. 물론 예전에도 탈북민들이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동안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대중 앞에서 강연을 많이 했지만 요즘처럼 자긍심에 넘쳐 땀 흘려 일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59년 1월 평양의 칠골 강 씨 집안에서 7남매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1974년까지 내각 부상(남한의 차관)이었다. 1980년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를 졸업한 나는 사로청중앙위원회를 거쳐 1985년까지 통일전선부 4국에서 일했다. 1991년까지 인민무력부 정치보위대학 보위전문연구실장으로, 1992년부터 금수산의사당(주석궁) 소속 ‘릉영륜전무역회사’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그 회사가 하는 일은 ‘금수산의사당’ 산하에 여러 개의 급양봉사 시설이 있다. 청류관(초대형 음식점), 류경호텔, 평양고려호텔 1층 냉면관 등이다. 이런 곳에 식당재료와 설비를 공급하는 일도 우리 회사가 했다. 물론 기본적인 일은 공화국 각지와 해외에서 ‘금수산의사당’에 필요한 물자와 자재를 공수해오는 일도 하지만 말이다.

▶재정경리부 진속을 말해 달라.

북한에서 수령을 위한 모든 물자는 ‘금수산의사당’ 재정경리부에서 전담한다. 농·수산, 식료품 등을 전문 생산하는 사업장이 전국 각지에 있고 위생과 안전은 최고수준이다. 전국에서 올라오는 특수제품 중에 최상의 것만 수령의 식탁이나 연회상에 오른다. 나머지는 외국정상, 국내 고위간부 등을 위한 상에 오른다. 일반 인민들이 평생 구경조차 하기 힘든 희귀상품이나 식품이라고 보면 된다.

 

1991년에 당시 강성산 함북도당 책임비서

장녀인 강희영 씨와 결혼…장인어른은 체코

프라하공업대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부터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지도원을 시작으로

평양시당책임비서(남한의 서울시장)등 지내

 

▶ 북한 총리 사위이다.

1991년에 당시 강성산 함북도당 책임비서의 장녀인 강희영 씨와 결혼했다. 그녀는 나보다 4살 어렸는데 정무원(내각) 사무국에서 근무했다. 이 지면을 빌어 아내와 아들(명인)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다. 장인어른은 1984년까지, 이후 1992년부터 도합 두 번에 걸쳐 공화국 총리직을 역임했다. 장인어른은 1931년 3월 함경북도 태생이다. 그의 부친이 김일성의 혁명전우로 항일운동을 함께 하였다. 김일성은 해방 후 전우 자식들(강성산, 연형묵, 김기남, 계응태 등)을 만경대혁명학원을 거쳐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유학 등을 보내주었다. 장인어른은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공업대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부터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지도원을 시작으로 평양시당책임비서(남한의 서울시장) 등을 지냈다.

▶탈북 경위에 대해 말해 달라.

1993년 12월 중순, 중국(길림·연길)으로 출장을 나왔다. 물론 당국의 승인을 받고 말이다. 목적은 중국 측과 비료공장 합작설립문제를 타진하고 그동안 밀린 자동차수출 미수금을 받는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3천 달러에 들여온 중고차 수백 대를 중국에 1만 달러씩 받고 팔았으니 제법 짭짤한 장사였다.

그런데도 탈출한 이유는 출장기간 “누가 총리사위를 출국시켰는가? 당장 소환하라. 만일 강명도가 자칫 남조선으로 도망 갈 기미가 보이면 현장에서 죽여 버려도 좋다”는 김정일의 지시내용을 지인한데 알고 섬뜩했다. 나는 그동안 땀 흘려 국가에 충성했는데 출국규칙을 어겼다면서 김정일이 노발대발 했으니 배신감이 무척 들었다.

▶자세한 탈출 경로가 궁금하다.

내가 가진 공무여권 유효기한은 10일이었고 기일이 넘도록 귀국하지 않은 나를 체포하려고 북한당국은 국가보위부 요원 40명으로 구성된 ‘강명도 암살조’를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하였다. 다행히도 중국에 있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베이징, 홍콩, 독일 등을 거쳐 1994년 5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서울 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는가.

관계기관의 조사를 마치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2년간 일을 하였다. 이후 민족통일연구원에서 1년간 근무했다. 2000년부터 경민대학교 북한학 교수를 역임하고, 2016년부터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북한학과 초빙교수로 활동했다.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큼은 정말 사명감에 넘쳐 일을 하였던 것 같다. 지금도 여러 대학과 기업 및 단체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남한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년간 근무

이후 민족통일연구원, 경민대 북한학 교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로 활동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큼은

사명감에 넘쳐서 일했던 기억이 새로워

 

▶요즘 유 튜브 활동 많이 하던데.

유 튜브 이봉규TV에 매일 출연한다. 구독수가 일일 기준으로 적을 때는 수천 명, 많을 때는 수만 명이다. 솔직히 말해 종편TV에 나갈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더라. 유 튜브의 영향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유 튜브 방송의 매력은 출연자가 말을 마음껏 해서 좋은데 내 적성에 딱 맞다.

 

유 튜브 이봉규TV에 매일 출연…구독수가

일일 기준으로 적을 때 수천 명, 많을 때는

수만 명…영향력 약하지 않다는 걸 느껴

 

▶문재인 정부를 성토하던데 이유가 있나?

작년 이맘 때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이후 외신(블룸버그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이라고 타전했다. 그때 ‘아차, 내가 문재인 정권에 속았구나!’ 하는 후회를 가졌다. 그 이후로 북한의 계속적인 미사일발사에 단 한마디 항명도 못하는 비겁한 이 정부에 완전 등을 돌렸다.

내가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탈북민정착지원 6가지 선거공약 때문이다. 그 속에 탈북한부모가정 문제도 있으며 이 정부 출범 절반이 지났는데 아직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최근 서울 봉천동에서 탈북모자가 아사했다. 분노를 금할 수 없고 내가 이 정권 구둣발에 짓밟혀 죽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 북한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자격이 없다.

▶탈북모자 사인불명을 어떻게 보나?

분명히 아사인데 현 정부에서 어떻게 ‘아사’라고 하겠나. 문재인 정부의 도덕적 문제와 직결된 사안인데. 정말 한심한 정부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탈북민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와 관악구에서 어떤 관계자도 한 번 조문하려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이게 사람이 먼저라는 정권이 맞는가.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분향소 지키는 일부 사람들이 “지난 대선 때 문재인을 지지한 탈북민은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다. 기가 막히다. 망자를 추모하는 장소에서까지 색깔논쟁을 펴는 추잡한 인간들이 탈북단체 대표라고? 소가 웃다 꾸러미 터질 노릇이다. 3만 탈북민이 힘을 합쳐도 어려운 시국에 정치 편 가르는 행태가 꼴불견이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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