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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사회 “평양에서 간부는 서울에 와서도 간부?”냉소적

[인터뷰] 국민의힘 인권위원회 위원 안찬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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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4-01-24 [14:25]

2천만 북한주민은 남한에 있는 탈북민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남조선 정권은 전직 공화국 간부들을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더구나 꽃제비 탈북자도 국회의원이 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

반면 90%가 노동자, 농민, 학생, 군인들로 이뤄진 (국회의원·정부인사)가 되는가? 간부 등용에서 출신성분을 따지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똑 같다는 실망도 존재한다.

정초부터 탈북민 사회에 4월 총선에서는 어떤 당일군, 지배인, 보위원 등 간부출신 탈북민이 국회의원 될까?”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의힘 인권위원으로 활동 중인 안찬일 탈북1호 박사를 만났다.

 

- 보수정당서 활동한 시기와 배경은.

지난 2009년 국가정보기관 퇴직, 사회로 나와 자연히 보수정당과 인연을 맺었다. 정보기관 공직생활을 하기 전에도 보수정당 당원이 된 적은 있었으나 크게 활동하지 않았다. 정치학 박사다보니 여의도연구원 등 보수정당 싱크탱크들 중에 친구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 선출 시에는 여의도 대하빌딩에 진지를 꾸리고 거기서 탈북민 본부장을 하였고, 그 후 여러 선거에서 보수정당 진영에서 뛰었다.

 

 

- 지난 대선 때 중책을 맡았던데.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때 윤석열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본부장 태영호 의원)서 일을 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탈북민, 다문화, 이북도민을 한데 묶어 최대 유권자 수를 거느린 조직총괄본부를 꾸려 탈북리더들이 활약할 기회를 주었다. 많은 탈북단체장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동분서주하며 윤석열 후보를 연호했다.

 - 대선 이후 탈북민 등용은 있었나.

10명의 탈북민 리더가 지역선거 활동은 물론 진보의 아성인 광주의 전남대학교 정문까지 내려가 윤석열 후보 지지를 호소하며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그러나 현 윤석열 정권이 들어와서 등용된 탈북민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재 국민의힘 인재영입에서 2명의 탈북민을 발탁했는데 한 명은 평양리과대학 출신으로 지방 어느 민간연구소의 이름도 생소한 연구위원, 또 한 명은 역시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청년 탈북민이다.

 

국가정보기관 퇴직 후 보수정당과 인연

윤석열 캠프 조직총괄본부서 일하기도

탈북민, 이북도민 등 조직총괄본부로

탈북단체장들과 동분서주하면서 활약

 

4월 총선에 현재 국민의힘 인재 확보

2명의 탈북민 발탁...평양리과대학 출신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청년 탈북민 영입

 

 - 보수정당은 왜 귀족 탈북민을 선호하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과거도 현재도 보수정당은 독재자 김일성을 비판하면서 그 독재자 충성분자만 신통히 골라 국회의원, 인재로 쓴다. 그러니 34천 탈북민의 약 30~40%가 진보정당(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로 나타나고 있다.

탈북민의 90%가 노동자, 농민, 군인, 학생, 가정주부 등 보통사람들인데 보수정당은 독재자 김정은 정권과 싸운다면서 그 정권에서 호의호식한 귀족탈북민만 선호한다. 많은 탈북민들이 보수정당에 배신감을 갖는 것이다.

 - 통일부 앞에서 삭발을 했던 이유는.

202234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탈북민들이 문재인 정권의 탈북어부 2명 강제북송규탄 삭발식을 했는데 나도 동참했다. 예전에도 북한인권 개선을 외치며 서울역광장서 삭발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내가 한 번만 더 삭발하면 이혼이라며 화를 냈다. 나는 매번 내 사전에 이혼은 없어요하고 서류를 찢어버렸다.

 

과거도 현재도 보수정당 독재자들

비판하면서 그 독재자 충성분자만

골라 국회의원 인재로 쓰고 있어

34천 탈북민의 약 30~40%

진보정당 지지자로 나타나고 있어

 

- 진보정당은 왜 탈북의원이 없나.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사실 사회적 약자 대변 정당이라는 진보정당이 보수정당보다 먼저 탈북의원을 배출했어야 했다. 문제는 진보정당이 북한 독재정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독재자대로 보고 주민은 주민대로 서로 분리해서 상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 둘 다 써야 정상이다.

 - 민주당에 조언을 한다면.

이제는 야당인 진보정당(더불어민주당)서도 탈북국회의원 나와야 한다. 거두절미하고 탈북민 의원은 34천 탈북민의 대표이자 동시에 25백만 북한주민의 대표인 것이다. 민주당도 북한주민을 우리 동포라고 부르지 않는가.

사실 진보정당의 첫 탈북민 국회의원도 관심이다. 그동안 보수정당 탈북민 국회의원과 비교되니 말이다.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반드시 탈북민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고 진보정당의 환골탈태를 보여주기 바란다.

 

 사회적 약자 대변 정당 진보정당이

보수정당보다 탈북의원 배출했어야

문제는 진보정당이 독재정권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주민은 주민대로

분리해 상대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

 

 - 역대 3인 탈북 국회의원 평가를 한다면.

탈북민 국회의원은 탈북민 사회서 그들과 생사고락을 나누라고 비례대표 준 것이지 법안제출, 실적성과를 위해 주지 않았다. 여기저기 탈북민 운영 음식점에 초대받아 먹방(유튜브)이나 찍고 왜 사무실에서 전전긍긍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3명의 전·현직 탈북의원은 교수, 외교관, 인권운동가 등으로 특정분야 출신이다. 일반 탈북민과 소통한 경험이나 시간도 전혀 없었던 은둔형 탈북민들이었다.

 - 바라는 새로운 탈북의원의 모습은.

독재자 김정은이 보라고 통일되기 전까지 정치권은 탈북민에게 계속 자리를 줘야한다. 이제는 노동자, 농민, 학생, 군인 등을 대표하는 평범한 탈북민이면 좋겠다. 탈북의원은 상징성이 크다. 노동자, 농민 혹은 군인병사 출신의 아무개가 남조선서 국회의원이 되면 세계적인 톱뉴스는 물론 2천만 인민에게 꿈을 주는 것이다.

 - 본인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할 이유를 들라면.

국회의원은 학연, 혈연, 지연 네트워크가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한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동기들이 우리 사회 중추에 많다. 과거 수 천회 안보강연을 했고 탈북민 대학생 장학금후원을 10여 년째 해오고 있으며 일부는 사비로 한다.

단점은 69세 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시대 나이는 숫자일 뿐! 그 나이만큼 오랜 경험과 노하우는 돈 주고도 못사는 귀중한 것이다. 병원에서 나의 신체나이를 20년은 젊게 보고 있다는 것도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탈북민 국회의원 탈북민 사회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라고 준 것

3명 전·현직 탈북의원은 교수, 외교관

특정분야 출신...일반 탈북민과 소통한

경험시간도 없었던 은둔형 탈북민들

 

남한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동기들 많아

과거 수 천회 안보강연을 했고 탈북민

대학생 장학금후원 10 년째 하고 있어

 

- 세비 50% 기부는 무슨 소린가.

단언컨대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4년간 받는 세비(국회의원 월급)50%를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장애인 등 어려운 취약계층의 탈북민을 위해서 적극 쓰겠다. 돈은 꼭꼭 움켜쥐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고 멋진 곳, 필요한 곳에 써야 돈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첫 국회의원이 되겠다.

 - 과거 문재인 정권을 지지한 이유는.

당시 탈북민의 40% 정도가 민주당을 지지했다. 문재인 후보 당선예상은 100%. 탈북민사회는 정부서 약 360억 원 예산지원을 받는 남북하나재단의 운영을 탈북민 중심으로 해줄 것을 박근혜 정부 때부터 요구했으나 우이독경이었다.

장애인재단, 체육인재단, 예술인재단을 보라. 모두 그들이 재단을 운영한다. 그런데 탈북민 재단만 항상 낙하산 인사로 수장이 채워졌다. 이런 불만을 진보정당서만 유독 들어주었다. 선거는 승산이 있는 쪽이 여유가 있는 법이다.

 - 윤석열 정부 지지 이유는 무엇인가.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외언론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으로 조롱할 정도로 임기 내내 평양정권에 아부를 하지 못해 몸부림을 쳤다. 탈북민 리더들은 몇 달도 안 되어 문 정부 지지를 철회했다. 이런 종북 좌파 정권이 다시는 없어야 했다. 가령 이재명 정권이 들어섰다면 탈북민들은 대거 해외이민을 갔어야 할지도 몰랐다.

 - 현 정부 출범에 어떤 제안을 했나.

지난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북5도청통일준비청으로 바꾸고 거기에 탈북민들과 실향민 2·3세들이 모여 통일준비를 하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남북하나재단 예산과 이북5도위원회 예산을 합쳐 통일준비청으로 가면 좋다. 지금처럼 탈북민(통일부)과 실향민(행정안전부) 관계기관 소속부터 다른 것은 혼란만 초래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북5도지사도 탈북민으로 해야 좋을 것이다.

 

지난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북5도청통일준비청으로 바꾸고

거기에 탈북민들과 실향민 2·3세들이

모여 통일준비를 하게 해달라고 제안

 

탈북민(통일부)과 실향민(행정안전부)

관계기관 소속이 다른 건 혼란만 초래

이북5도지사도 탈북민으로 해야 할 것

 

- 이북5도지사 중 4명이 실향민 1.5세 혹은 2세다.

엄밀히 말해 실향민 1.5세는 북에서 태어나 4~5살 때 부모 손목을 잡고 남으로 내려온 아동이다. 그 아이가 70년이 지난 북한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실향민 2세는 남한서 출생한 사람들로 북한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안다. 그냥 아버지 고향이 이북이라는 특수성으로 정부인사 감투를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54년 신의주서 태어났다. 평안북도당서 근무하던 부친이 의주군당으로 발령되어 출생신고는 의주서 했다. 형제는 5남매 중 장남. 19714월 고등학교 졸업, 부친은 나를 신의주사범대학에 입학원서를 내주었다. 거기서 4개월간 공부하고 197110월 인민군에 입대, 전방부대 배치 받았고 21살에 노동당원이 되었다.

 - 언제 남한으로 왔는가.

제대 무렵 군관(장교)이 되려고 평양에 있는 김일성군사정치대학입학을 간절히 희망했다. 그러나 같이 복무했던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 아들, 인민무력부 작전처장 아들 등에 밀려 지방의 사회 일반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내가 군사복무기간 중 훈련과 조직생활을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못했다면 모르겠다. 도무지 화가 나서 못살겠다는 마음이 뇌리를 쳤다. 하여 그에 항거하는 심정에서 19797월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귀순했다. 25살 때이다.

 

1954년 신의주서 출생...7110월 입대

전방부대 배치... 21살에 노동당원 되기도

797월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귀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본교서

석사과정 마친 후 건국대학교서 7년간

노력 끝에 탈북1호 박사타이틀 가져

 

- 귀순 이후 경력을 말해 달라.

정부의 배려로 좋은 직장을 소개 받았고 서울 아가씨와 결혼도 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본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건국대학교서 7년간의 노력 끝에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 탈북1호 박사타이틀을 가졌다.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뉴욕의 아이비리그 컬럼비아대학 초빙교수로 초청되어 1년 동안 뉴요커로 살았다. 귀국 후 10년간 정보기관 근무를 더하고 퇴직했다. 이후 세계북한연구센터설립·운영 등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 현재 이사장인 세계북한연구센터는.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20107월 서울서 개소했고 현재 종로구에 있다. 탈북민출신 북한전문가들과 외국의 북한연구학자들로 구성된 북한체제연구 싱크탱크이다. 이때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상임위원이었는데 문재인 정부시절 공백기를 거쳐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다시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20대 중반에 목숨 걸고 휴전선을 뚫고 남한으로 내려와 탈북1호 정치학 박사가 되었다. 지금도 북한군에서 많은 후배들이 김정은의 가병으로 산다. 만약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100만 인민군 장병들에게 분명히 꿈과 희망이 될 것이다.

바라건대 보수정당은 제발이지 탈북민 중 은둔형 인물을 국회의원 비례대표후보 혹은 영입인재로 선출하지 말았으면 한다. 가능하다면 3만 탈북민이 크게 공감하고 지지하는 참신한 인재를 찾아 국민의 대표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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