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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은 자유, 인권, 번영 위한 가치가 있는 통일로 무너져야”

[인터뷰] 이재춘 전 러시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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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3-06-21 [14:25]

 평양시 대동강구역 소룡동 인접 동()인 사동구역 송신동에는 지난 6·25전쟁 시기 참전했다가 전사한 소련(현 러시아)군 장병들의 묘역이 있다. 규모가 가장 큰 소련군 묘지로 주택가와 수림이 어우러진 지역에 있다.

중구역 경상동 모란봉에는 소련군의 19458·15 조국(북한)해방전투 참전을 기념하는 해방탑이 있다. 평양서 제일 큰 외국공관은 서문동의 주조(북한) 러시아대사관으로 경내 안에 직원주택과 학교, 클럽 등이 있고 규모가 대단히 크다.

1940년대 말 소련군정 시기부터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는 북한의 제1동맹국이었다. 냉전시대를 지나 사회주의가 붕괴된 1990년 이후 중국이 제1동맹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평양의 최대 우방이다.

인권탄압과 핵개발의 주범으로 각인된 김정은 시대에서도 북한과 러시아는 돈독한 관계이다. 러시아를 잘 아는 것도 한반도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재춘 전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를 만나 한국과 러시아 북한과 러시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재임 기간은 언제인가.

지난 20003월부터 20022월까지 주러시아 한국대사를 역임했다. 김대중 정권에서다.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그해 6월 평양에서 열렸다. 원래 614일에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출발 평양도착,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을 시작해야 했으나 하루가 늦어진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외교행낭을 통해 45천만 달러가 평양에 전달되고서야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입국을 승인했던 것이다.

 - 모스크바에서 본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이후 그해(2000) 가을 김정일의 서울 답방예정설이 솔솔 흘러 나왔다. 그 소리를 러시아외무성 고위관리에게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가로 젓더라. 이유를 물으니 김정일은 꼭 열차만 고집하는 사람인데 평양서 서울까지 철도연결이 가을 전에 가능하겠는가?”고 되묻더라.

그러고 보니 38선에 끊어진 남과 북의 철도연결은 단시일 내에 이뤄질 사항이 아님을 새삼 느꼈다. 서울보다 평양을 더 잘 아는 모스크바다. 러시아와 북한, 두 나라의 공통점은 최고지도자가 잘 안 바뀌고 장기 집권한다는 특성이다.

 - 재임기간 김정일이 열차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20017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별초청으로 24일간 러시아를 방문했다. 평양서 모스크바까지 열차로만 이동했기에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정상회담까지 포함해 보통 3~7일간 걸리는 일국 방문을 24일간 했는데 이는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이 아닐까 한다(웃음).

 

2001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특별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평양서 모스크바까지

열차로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려

비행기 이용하면 정상회담까지 포함

3~7일간 걸리는 방문을 24일간 해

이는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이 될 듯

 

- 관련해서 더 말해준다면.

훗날 모스크바에서 당시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수행책임자로 임명된 푸틴 대통령의 전권특사인 콘스탄틴 보리소비치 풀리코프스키를 만났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열차에 대한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떤 때보면 아주 심각한 고독함(외로움)에 빠져 있은 것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를 수행하는 북한의 수십 명 고위관리들도 장장 24일간 열차에서 어떤 자그마한 불편도 표출하는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 러시아와 북한 관료들의 공통점은.

러시아는 형식상 정치권의 여당과 야당이 존재하는 의회민주주의 국가라 하지만 실제는 일당 독재국가이다. 3성 장군 출신인 풀리코프스키와 대화를 하면서 이들은 군인정신으로 국가에 충성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외교적 및 정치적 문제에서는 상대와 대화를 하면서 편하고 진지하기보다 절제하고 입 닫음을 유지하는 비밀신비주의에 포로가 되어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분명 보였다.

 - 당시 주러 북한대사는 박의춘 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5살 많다. 함경남도 태생으로 1973년 카메룬 주재 임시대리대사를 시작으로 외교부 부부장(차관)까지 올랐다. 19987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국회의원)에 선출되었고 이후 8년간 주러 북한 대사를 역임했다.

재임기간 2차례의 북러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정도로 외교력이 뛰어나다. 2007년부터 8년간 외무상에 임명, 재임명 되었다. 이후로는 북한매체에 전혀 이름과 얼굴이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 은퇴하고 조용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러 관료들의 공통점이라면 외교적

정치적인 문제에서 상대와 대화는

편하고 진지하기보다 절제하고

입 닫음을 유지하는 비밀신비주의에

포로가 되어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군인정신으로 국가에 충성심 느껴

 

-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었나.

리셉션(공공 행사에서 베푸는 파티)이나 외교단 연회장에서 만나면 재밌다. 박의춘 북한대사가 나와 단 둘이 얘기를 할 때는 친근한 어조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7천만 민족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해외에서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며 말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누가(북한 참사관, 보위부원으로 추정) 오면 목청을 높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사라는 사람도 보위부의 감시 속에 산다는 것을 느꼈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해 가을부터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두드러지게 나왔다. 어느 날 박의춘 북한대사가 파티서 나에게 요즘 서울에서 평양에 대고 포용, 포용 하는데 대체 누가 누구를 포용한다는 거요?” 라며 화를 버럭 내더라. 원래 국제무대에서 정치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대단히 예민한 북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포용이란 것은 우리말로 서로 껴안음을 나타내는 포옹이나 같다. 너무 정치적으로 신중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 못 들은 척 하더라. 자기 할 말만 하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것도 북한외교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 푸틴 대통령은 어떻게 보였나.

내가 부임한 20003월에는 푸틴 대통령권한대행이었다. 57일에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15일 크렘린(대통령궁전)에서 대사신임장 제정행사가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푸틴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푸틴의 서울방문을 적극 제의하였고 그도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며 만나고 싶다는 충동을 서슴없이 표현하더라.

 

박의춘 북 대사가 서울에서 평양에

포용, 포용 하는데 누가 누구를 포용

한다는 거요?”라며 화를 버럭 내더라

원래 국제무대에서 정치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대단히 예민한 북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포용이란 것은 우리말로 서로

껴안음을 나타내는 포옹이나 같다

정치적으로 신중하게 생각하지 말라

고 하니 못 들은 척 하더라.

 

 - 한국을 잘 안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후 러시아 헌법재판소장의 초청으로 한국의 헌법재판소장(김용준)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크렘린에서 푸틴을 포함해 4명이 만났다. 다소 이례적인 푸틴의 동정이었다. 이때 비교적 푸틴이 한국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였다.

상공에서 본 한국의 토지(논과 밭)는 매우 정교했으며 울산지역의 산업공단이 아주 역동적이었다고 하더라. 속으로 푸틴이 KGB(소련의 비밀정보기관) 출신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했다. 후에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경제자문역 가명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한국정보기관의 통보를 받았다.

 

- 러시아의 경제성장은 진퇴양난 아닌가.

푸틴이 집권에서 큰 난관은 경제 성장이었다. 유럽모델, 남미모델을 놓고 고민할 때 내가 대한민국 경제모델을 권고했다.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모델이다. 크렘린당국도 많이 공감을 했으나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푸틴의 독재가 길어지면서 서서히 북한모델(정치·일당독재)을 따라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럴 만도 하다. 일당독재 정책만큼은 북한이 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 모스크바는 평양과 동맹이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한국과의 경제발전을 협력하였다. 그중 일환이 시베리아철도와 가스송유관연결 문제이다. 문제는 2개 모두 북한에 가로 막혀 전혀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된다.

북한을 설득하여 철도와 송유관 문제를 해결했다 쳐도 언제 끊길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고 미래이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는 서울과 가까워지고 싶으나 정치라는 특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양과도 관계유지를 하는 모스크바다.

- 러시아 내 북한근로자들 어떻게 보나.

유엔안보리는 201712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발사에 대한 응징으로 해외 북한노동자들을 2019년 말까지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한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북한근로자들을 채용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유엔결의를 따랐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만은 국제사회가 그러거나 말거나 북한근로자들을 계속 쓰고 있다. 이 두 나라가 유엔 상임이사국이다.

 

유엔안보리가 201712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발사

응징으로 해외 북한노동자들을 2019

말까지 송환시키도록 규정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이에 따라 북한근로자들

채용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유엔결의 따라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만은 국제사회가

그러거나 말거나 북한근로자들 쓰고 있어

 

 - 어떤 복안이라도 있는가.

특별히 없다. 나는 이젠 공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이다. 설령 내가 공직에 있다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이다. 자국민들도 어쩌지 못하는 그 나라 국가정책을 외국인이 왈가불가 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중국과 러시아가 시간이 흘러 그나마 민주주의국가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을 했다.

지난 2003년 서울서 설립된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세계서 가장 처참한 북한의 인권개선과 북한인권침해(과거사) 청산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북한인권침해 실태조사,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운영을 통한 인권침해기록 DB구축 및 관리를 한다. 또한 인권침해구제 및 예방, 북한당국의 직접적 피해자 보호와 남한정착지원을 위해 노력한다. 2016년부터 3대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신영호 이사장이다.

 

 정부와 민간, 국제사회가 협력해 세계에

하나 뿐인 북한인권박물관설립 기대

정부가 만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민간단체서라도 만들자는 것

북한인권박물관은 반드시 필요 해

 

- 북한인권박물관 건립추진위원장이다.

정부가 만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민간단체서라도 만들자는 것이다. ‘북한인권박물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는 기록하고 보존해야만 한다. 그래야 과거에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것을 향해 발전하는 법이다.

바람이 있다면 정부와 민간, 국제사회가 협력해서 세계에 하나 뿐인 북한인권박물관이 꼭 생겼으면 한다. 외국의 경우 민주화, 인권자유 등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한국은 빈약하다. 북한인권에 대해 눈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잘못된 태도는 통일 후 북한주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 바람직한 통일은 어떤 것인가.

한반도 분단은 강대국(미국, 소련)의 역학적 관계로 인해 되었다. 통일도 마찬가지로 주변 강대국(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피치 못할 요인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김 씨 수령 3대 정권은 분명히 자유, 인권, 번영을 위한 가치가 있는 통일로 무너져야 한다. 아울러 남북한 7천만 민족, 해외 1천만 동포까지 모두 8천만 명이 원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한반도의 자주, 민주, 평화통일이다.

 

경 력

1940년 서울출생, 서울대학교 법대 중퇴,

1968년 제1회 외무고시에 합격,외교부에 입부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을 거쳐 1995년 초

외무부 제1차관보로 임명되었으며

1996년 초부터 주유럽연합 대사로 재직

2002714일부터 81일까지

한러친선특급단장 자격으로

블라디보스토크부터 하바롭스크 등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모두 7개 도시를 1819일 동안 순방

2003년에 외무부를 떠났으니

35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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