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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의 날’ 제정된 이북도민사회...‘실향민 통일축제’펼친다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김기찬 황해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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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3-04-21 [10:58]

27년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건설현장을 탈출하여 서울에 온 기자가 정든 고향집처럼 자주 드나드는 종로구 구기동의 이북5도청(통일회관)이다. 당시 60대 초반의 실향민 어르신들이 지금은 90세 전후로 많이 안보이기도 한다. 그들도 나처럼 20대 시절에 공산독재정권의 폭정을 피해 자유대한의 품으로 내려온 북한주민들이다. 무고한 인민을 강제 탄압하는 노동당독재정권은 오래 못갈 거라고 많은 실향민들이 입을 모았으나 결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해방(19458) 후 시작된 김일성 독재정권은 김정일-김정은으로 3대를 이어왔고 4대까지 갈 기미도 보인다. 이제 기껏해야 10년의 여생을 사는 실향민 1세대에게 고향으로 가는 날이 영영 없어 보이기도 하는 비극적 실정이다.

지난 228일 실향민 사회에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이산가족의 날을 매해 추석연휴 전날인 음력 813일로 지정했다. 서울 구기동 이북5도위원회를 찾아 김기찬 황해도지사를 집무실에서 만났다.

 

- ‘이산가족의 날제정은 어떤 의미가 있나.

지금까지 민간단체가 서로 다른 날에 진행해온 이산가족 관련 행사였다. 예를 들면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매년 음력 813일에 이삭가족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였고 통일경모회는 추석 당일 합동경모대회를 진행해 왔다. 형식과 방법은 다르지만 내용은 똑같은 것이었으니 이제는 관련행사를 통합한다는 의미가 있다.

음력 813일 제정은 여러 날이 있었다. 그러나 813일로 결정된 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이산가족들의 희망을 최대한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결정되었다고 정부(통일부)가 설명했다. 따라서 이산가족의 날은 통일부가 주관하는 유일한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여러 날로 분산되었던 행사가 같은 날에 열리면 그 홍보효과도 분명 있으리라 본다.

- 현재 생존한 실향민은 어느 정도인가.

정부의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해방 후 휴전까지 8년간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은 약 180만 명 으로 추산한다당시 20대가 지금은 90대 고령이다. 매해 고향을 그리다가 하늘나라로 가시는 분들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고향 땅 한 번 밟아보고 눈을 감았으면 하는 그 마지막 소원도 못 이루고 세상을 떠난다. 민족의 비극이고 슬픔이다. 현재 실향민 1세대 생존자는 약 30~40만 명으로 추정한다.

 


남으로 온 실향민은 180만 명 추산

당시 20대가 지금은 90대 고령으로

매해 고향을 그리다가 하늘나라로

가시는 분들이 눈덩이처럼 늘어나

1세대 생존자 약 40여만 명 추정

 

 - 이산가족 상봉신청자는 전체의 몇 %인가.

전체적으로 보면 이산가족 신봉을 신청하는 가족은 그렇게 많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며칠간 북측가족을 만나보았자 아픈 마음에 더 상처만 될 것 같고, 또 하나는 북한 당국의 놀음이 마땅치 않아서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이산가족 상봉신청자 133.675명 가운데 생존자는 31.9%에 불과한 42.624명이다. 탈북민들이 증언하기를 이산가족상봉에서 남측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이래저래 당에 돈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 실향민들이 해외에도 많던데.

지난 1960~70년대는 수만 명의 실향민들이 미국, 캐나다, 유럽 등으로 이민을 갔다. 그중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혹시 해외국적을 가지면 이북고향 방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만큼 고향방문을 애절하게 염원했던 실향민 1세대들인데 이제는 거동조차 불편한 나이가 됐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민간단체가 서로 다른 날에 치르던

이산가족 관련 행사 한날 함께 진행

이산가족들 희망 반영 813일 결정

따라서 이산가족의 날은 통일부가

주관하는 유일한 법정기념일이 된 것

 

 - 해외 이북도민 초청 고국방문을 추진하는데 궁금하다.

남한이 가난한 시절인 1960년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나가서 고국의 발전에 기여하신 해외동포들이 적지 않게 있다. 이제 모두 연로하신 분들이다. 그들을 고국으로 초청하여 발전상을 보여주고 정부의 통일정책 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실향민들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커다란 긍지감을 갖고 참석한다. 해외서 민간외교를 잘하여 고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자리이다매해 5월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가 주최한다.

 

통일부는 현재 이산가족 상봉신청자

133.675, 생존자는 31.9% 불과

42.624명으로 확인...탈북민들이

증언하기를 남측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이래저래 당에 돈을 바쳐야 한다고 해

 

 - 황해도지사 직무는 언제부터 맡았나.

지난 2021417일에 취임했다. 황해도지사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차관급 공무원이다. 현재 이북5도위원회 5명의 이북도지사 중에는 내가 유일하게 실향민(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나머지는 남한에서 태어난 실향민 2세와 탈북민 출신(조명철 평안남도지사)이다. 실향민 출신 이북도지사는 아마도 내가 마지막일 것 같다. 다음 세대가 이어가야 할 것이다.

 - 북한 황해도 지역의 특성은.

황해도는 북한의 대표적 곡창지대다. 해방 후 황해도 경지율은 34%로 전국 최고, 연백군서는 무려 58%까지 올라갔다. 지금도 재령, 연백평야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쌀은 북한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6·25전쟁 때 황해도 연백, 재령을 남한에게 빼앗겼다면 이미 식량문제로 붕괴되었을 거라고 본다.

 

2021417일 황해도지사 취임

현재 이북5도위원회 5명 이북도지사

중 유일하게 실향민...실향민 출신

이북지사는 아마도 마지막 될 것

 

- 실향민 중에 황해도 출신이 많은가.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1875~1965) 박사가 황해도 평산 출신이다. 항일애국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3년 전 사망한 정원식 전 총리, 작년에 작고하신 국민MC 송해(본명 송복희) 선생 등 황해도 출신 유명인이 다소 있다.

전쟁 이후 180만으로 시작된 실향민사회는 지금의 4세대(증손자)까지 그 숫자를 약 880만으로 추정한다. 이중 40%에 해당하는 약 350만 명이 황해도 출신이다. 아무래도 38선과 가까운 지역이라는 특성도 분명 있었다. 전쟁 전에는 연백군의 대부분과 장연군과 벽성군의 일부분이 한국의 실효지배 하에 있었다.

- 가칭 인천 실향민 통일축제는 뭔가.

올해 922~23일 이틀에 걸쳐 인천광역시에서 진행할 예정인 인천 실향민 통일축제’(가칭)이다. 사실 황해도지사 직무를 맡으면서부터 구상해온 행사다. 발상은 임명 후 처음으로 참가한 6월에 있은 속초 실향민 문화축제에서 했다. 옛 사진전시회문화 및 음식체험 등 다양한 행사로 구성된 속초 실향민 문화축제는 아바이마을의 특성과 함께 속초시 지역의 독특한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 왜 굳이 인천지역인가.

남한에서 실향민이 가장 많은 지역이 인천이다. 대략 70만 명의 실향민 가족이 있으며 이중 과반이 훨씬 넘는 50만 명이 황해도 출신이다. 인천과 황해도는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전쟁 때 많은 이북피란민들이 인천에 왔다.

그리고 문화축제도 좋지만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보다 희망적으로 생각하자는 취지도 담았다. 또한 인천의 특성을 또 하나 꼽으라면 교통이 아주 편리하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와 붙은 인천광역시는 지하철, 버스, 여객선 등이 아주 발달되어 있어 전국의 실향민들이 찾아오기가 매우 쉽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천 교동에 이북 실향민과 후손들이

운영해오는 재래시장 있어...이곳을

탐방하는 것도 하나의 문화체험 될 듯

 

올해 922~23일 이틀에 걸쳐 인천에서

진행할 예정인 실향민 통일문화축제

황해도지사를 맡으면서부터 구상한 행사

옛 사진전시회문화 및 북한음식체험 등

다양하게 구성된 실향민 문화축제될 것

 

 -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실향민 2세인 전임 박남춘 인천시장 재직 당시 이런 내용의 제안을 했다. 박 시장이 많이 공감했고 이후 아쉽게도 지난 6월 지방선거서 현 유정복 시장이 선출되었다. 유 시장도 황해도 출신 실향민 2세이다. 그에게 인천 실향민 통일축제에 대한 설명을 다시 진지하게 하였다. 그 결과 현재 인천시청과 우리 황해도가 올해 가을에 있은 그 행사와 관련하여 예산 및 조직 등 준비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 대략 어떠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나.

인천에는 해양경찰청이 있다. 해경의 협조를 받아 전세여객선을 타고 NLL 근접 지역 해상으로 나가서 북한 땅이 바라보이는 시점에서 배를 정박하고 그 위에서 선상 망향제를 진행하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다. 그동안 육지서 하는 망향제는 수십 년 째 해오는 임진각 망향제이다. 바다의 망향제를 시작하는 의미가 있다.

교동에는 아직도 이북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운영해오는 재래시장이 있다. 이곳을 탐방하는 것도 하나의 문화체험이 될 것이다. 탈북민들의 북한실상 강연 및 북한 바로 알기 세미나, 전통적인 음악무용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효과는 국민적 관심과 호응도이다. 사람, 특히 노인에게 있어서 무관심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없다. 실향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평생토록 귀향을 소원으로 간직하고 오늘의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한생을 바쳐 이바지한 분들이 아닌가.

단지 세월이 지났다고, 쓸모없는 고목이 되었다고 사람들로부터 외면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분단으로 인해 고향도 못가시고 타지에서 눈감으시는 그들에게 온 국민이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갖자는 것이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462월 지금의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경기도 연백군으로 행정지역이 남한의 통치권에 속해 있었다. 내 위로 2명의 누님이 있고 아버지는 내가 3살 때에 질병으로 사망하셨다. 홀어머니가 온갖 고생을 마다하면서 우리 3남매를 키우셨다. 6·25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인민군은 눈에 쌍심지를 키고 밤낮으로 반동분자를 찾아서 비판무대에 세우거나 공개처형을 하였다.

마을에 쳐들어온 인민군은 젊은 남자들을 찾아서 팔에 완장을 채워주고, 젊은 여자들은 여맹위원장자리를 주면서 주민통제를 강행했다. 큰누님도 자칫 끌려갈 판이었는데 어린 나를 아들이라고 속여 화를 면했다. 어머니가 보다 못해 더는 못살겠다며 3남매를 데리고 온밤을 걸어 교동을 통해 남하했다. 19513월이었다.

-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남하한 그해에만 교동, 강화도 지역에 피란민(지금으로 말하면 탈북민)3만 여명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산에 올라가 소나무껍질, 풀뿌리를 마구 캐먹었다. 탈북민들이 말하는 북한의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과 똑같다.

당시 미군이 군수물자인 밀가루(20kg)를 한 가정에 한 포씩 나눠주었다. 어떤 때는 커다란 깡통(씨레이션- 과자, 땅콩, 껌 등 전투식품)을 배급받았다. 미국은 다 죽어가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 학력과 경력이 궁금하다.

19642월 숭문고등학교를, 1968년에 경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2004년까지 36년간 홍익대학교 교직원 및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2007년부터 1년간 서울 종로구청장 비서실장, 2009년부터 4년간 종로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3년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시 종로구 협의회장 직무를 맡았다. 201611월 대통령 표창, 202011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북한이 과감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많은 주민들이 배고픔에 허덕이는 상태서 한 발에 수십 억 원의 각종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잘못된 모습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터지면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김정은 자신임을 반드시 명심했으면 좋겠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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